이 시대의 앨리스는 누구일까? 앨리스는 많은 이들이 알 듯이 소설 속 주인공이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허구세계 안에서도 더 허구적인 원더랜드에 다녀온 꿈 많은 소녀이다. 앨리스에게 원더랜드는 허구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한 이중적인 공간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원더랜드와 닮아 있을지 모른다.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 누구와도 손 쉽게 닿을 수 있고, VR 기기를 통해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작은 방에서 드넓은 하늘을 날수도 있다. 실상 이 시대에서 허구세계를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증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증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앨리스는 누구일까.

 

▲ 성민우, 오이코스_4월의 부케
비단에 채색과 금분, 100x80.3cm, 2018

 

▲ 성민우, 오이코스_민들레와 강아지풀
비단에 채색과 금분, 90.9x72.7cm, 2018

 

▲ 성민우, 오이코스_첫사랑
비단에 채색과 금분, 116.8x91cm, 2017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이라 칭할 수도 있고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 속 자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단순하게 접근해보고 싶었다. 그 첫 시작은 앨리스는 ‘여자’라는 것이다. 루이스 캐롤은 왜 여자 아이인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피터팬이나 톰 소여처럼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가 더 스펙터클한 모험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문학적 해석은 유보하고, 드물게 모험을 떠나는 주체적인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앨리스에게 주목해보고 싶다. 근대기 소설에서 드물게 앨리스는 진취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그저 꿈만 꾸는 소녀가 아닌, 성인이 되었다면 그의 삶과 생활은 어땠을까. 실제 할리우드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2016)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동방으로 무역을 떠나는 배의 선장으로 그려지고 있다. 원더랜드에서 씩씩하게 모험을 하듯, 현실에서도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앨리스 역시 그저 꿈속에서 모험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실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현 시점의 앨리스를 찾기 위한, 혹은 앨리스가 가꾸었을 법한 공간을 그림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이번 전시를 시작되었다. 2017년 전시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만드는 현실 속 원더랜드를 경험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이 시대의 앨리스가 만들었을 법한 <앨리스의 정원>에 들어가 볼 수 있다.

 

▲ 윤상희, 아름다운 족쇄 : 허리 교정기
협저태칠, 옻칠, 삼베, 적동, 금도금, 자개
63x36x(H)50cm, 2014-2017

 

▲ 윤상희, 붉은 방패
협저태칠, 옻칠, 삼베, 자개, 두부, 금가루
62.5x83x16.5cm, 2014-2018

 

▲ 윤상희, 나의 20대 일기 (My diary in my twenties)
옻칠, 삼베, ABS, 자개, 황동, 금도금, 두부, 금분
55x20x(H)40cm, 2017-2018

세 명의 작가에 따라 다른 정원을 꾸미는 요소들로 어우러진 앨리스의 정원이다. 전통채색 기법을 바탕으로 일상의 풀을 그려내는 성민우의 작품에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풀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운 빛을 내며 뽐낸다. 황나현의 작품에서는 얼룩말이 놀던 아름다운 공간 속에 있던 꽃과 정물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하고 싶게끔 편안함과 매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3D프린터로 기형을 만들고 그 위에 옻칠 기법으로 장식을 한 윤상희의 작품은 그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형상을 통해 앨리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정원에는 주인의 취향이 반영되듯, 이 정원의 주인인 앨리스는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여도 그 속에는 그리워하는 꿈이 있고, 밟히고 무시당했던 기억이 있으며, 가시에 찔리고 심장이 터질 듯 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전시 속 작품들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 정원을 꾸민 앨리스도 자신만의 원더랜드를 꿈꾸던 소녀였지만,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소중한 존재와 함께 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지만, 원더랜드를 모험을 꿈꾸던 소녀였던 자아와 현실이 부딪히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 황나현, 그녀의 화원
Acrylic on Canvas, 61x72.7cm, 2018

 

▲ 황나현, 요정정물
Acrylic on Canvas, 61x72.7cm, 2018

 

▲ 황나현, 정물화
Acrylic on Canvas, 39x50cm(지름), 2017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는 앨리스로 대변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그들이 식물과 곡선이라는 유기적 형태와 모티브를 통해 풀어내는 생태학적 관점을 볼 수 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앨리스 정원 안에서 특별한 사연을 듣거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러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생명의 이미지와 여성의 내면을 표현하는 세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진 <앨리스의 정원>의 문을 열어 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