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왜 할까?” 아내에게 물었다. “사진은 당신이 하는데 나한테 물어보면?” 그렇지…? 혼자 중얼거리다가 그래∼ 호모 루덴스야. 내게 있어 사진은 보물찾기 놀이 같기도 하고 술래잡기 놀이 같은 것이다. 느낌을 주는 어떤 대상을 찍는 놀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은 모든 생각이 멈추게 되어 더 좋다. 찍힌 사진이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다.

▲ 안병석, There #3
Pigment Print, Diasec, 41x61cm, 2018

▲ 안병석, There #5
Pigment Print, Diasec, 51x76cm, 2018

▲ 안병석, There #9
Pigment Print, Diasec, 51x76cm, 2018

그곳에는 여러 삶의 흔적이 있다. 더 많고 더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경쟁으로 언제나 소란스러우며 동시에 소소한 일상의 모습도 함께하는 곳이다. 사진기를 가지고 그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샌가 나는 사라지고 그냥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만 보게 된다. 어제는 안 보이던 것이 오늘은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나의 모습이 있고 욕망의 흔적과 상처를 만나며 민망함과 부끄러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 곳이다. 또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뭐 그런 잡다한 것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내가 찍은 대상은 누군가는 한 번쯤 만났던 것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진에서 나는 아득하고 아련하며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발가벗은 듯 부끄럽기도 하며 불쑥 나타나거나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그것은 거칠면서 부드럽고 묵직하기도 하며 가볍기도 하고 얕으면서도 깊은 그런 느낌도 받는다. 그리고 어떤 존재의 시간 흔적 같기도 하고 기억이 만든 환상이며 낯설면서도 동시에 낯설지 않은 이중적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내가 받는 느낌은 다양하고 같은 사진이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다.

찍힌 대상은 가려진 채로 있기도 하고 튀어나온 어느 한 부분이기도 하며 저 멀리 있기도 하다. 그것의 전체 모습은 저 너머로 향해 있고 또 뚜렷하지 않고 애매하고 모호한 흔적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전체가 아닌 부분을 찍음으로써 나는 존재를 전체로서가 아닌 ‘지금까지’라는 존재의 시간성을 말하는 것이다. 또 흔적의 모습은 어떤 ‘그것’이 존재하였음과 오래된 기억의 불확실성을 나타내려 함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여러 번에 걸쳐서 선택과 변경을 반복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느낌도 그렇지만 같은 맥락의 분위기 또는 느낌의 여부에 따라 선택하고 제외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어울리는 존재가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함이었다.

▲ 안병석, There #14
Pigment Print, Diasec, 41x61cm, 2018

▲ 안병석, There #18
Pigment Print, Diasec, 51x76cm, 2018

어쨌든, 내가 찍은 사진은 그대로 있는데 그때마다 느낌과 선택은 왜 다른가? 그때의 느낌은 어디서 왔고 그때의 기준은 또 어디서 왔는가? 질문은 계속된다. 이것은 존재인가 시간인가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인가? 이것이 ‘그것’을 보는 나의 모습이고 동시에 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