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희, I have a dream
24.2x41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pink city
150x150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보이지 않는 마음
45.5x45.5cm, Acrylic on Canvas, 2019

행복하게 꿈꾸는 돼지

임성희는 그동안 돼지를 주요 소재로 삼아왔다. 그에게 있어 돼지는 우연히 마주친 소재였고 처음에는 일반적인 편견과 같이 심술궂기도 하고 욕심 많은 존재였다. 임성희의 돼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도 했고, 인간의 욕망과 유한성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돼지의 모습을 관찰하고 실제 돼지가 하지 못할 법한 자세나 표정을 부여해주다보니, 그림 속 돼지는 작가를 닮아갔다. 그만큼 돼지들은 그림 속에서 인간적인 표정과 행위를 한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듯 해맑게 웃고, 가족들끼리 서로를 껴안으며 체온을 나눈다. 실제 돼지와 달리 목을 위로 들고 달을 바라보고, 슈퍼히어로와 같은 복장을 하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돼지 특유의 사랑스럽고 통통한 모습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돼지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최근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눈에 띠게 웃고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의 웨민쥔(岳敏君), 혹은 일본의 나라 요시토모(ならよしとも) 때문일까. 실상 중심을 이루는 소재의 행복한 모습은 멀리 풍속화나 장르화에 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그다지 현대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단지 이 시대에 있어서, 행복한 돼지와 같이 즐거워하는 인물 혹은 동물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우울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감성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작품 속 돼지들처럼 이렇게 활짝 웃는 것이 하루에 몇 번이나 될까. 누군가와 살을 부비고 온전히 서로만의 체온을 나누었던 경험이 있긴 할까. 그리고 내 꿈은 사실 슈퍼히어로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가 있을까. 제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빠른 변화들 속에서 매순간 수많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무게로 인하여 행복이라는 것을 미뤄만 두었을 런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임성희의 작품 속 돼지를 보고 잠깐이나마 행복이란 것을 ‘지금’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찾고자 하는 행복을 미루지 않고 지금, 돼지들을 통하여 갖게 된다.

▲ 임성희, 봄날에
45.5x33.3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봄날의 정원
45.5x45.5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봄을 기다려
46x91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수줍음
31.8x41cm, Acrylic on Canvas, 2019

아이와 같이,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

더욱이 근작에서 임성희는 자신이 그린 돼지에 엄마로 가졌던 사랑, 아이들의 즐거움, 어린이와 같은 순수하고 자유로운 표현 등을 담아보고자 했다. 그렇기에 더욱 작품 속 돼지들이 편견 없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우리의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유토피아와도 같다. 그러한 유토피아는 항아리에 담겨있다.

작가 임성희는 조선의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떠한 무늬도 꾸밈도 없지만 그 자체만으로 풍만한 느낌을 주는 그 따듯함은 작가가 돼지들에게 부여한 행복한 세상과 맞닿아있다. 둥근 곡선의 달항아리 뿐 아니라 우아한 곡선을 가진 긴 목의 정병, 어깨에서 잘록한 허리로 떨어지는 매병의 곡선이 만들어낸 한국의 전통 도자의 형 위에 임성희는 행복의 흔적을 남긴다. 그가 표현해오던 돼지들이 도자 위에서 놀고 휴식을 취한다. 동시에 마치 아이의 낙서나 그림과도 같은 단순한 조형들이 도자의 무늬를 이룬다. 작가는 어린 시절 집에서 보았던 도자의 무늬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도자 위에 무늬를 넣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작품 속에서는 전통 도자에서 주로 등장하는 호랑이나 꽃과 같은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들어진 무늬가 아닌,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낙서로 가득한 도자가 되었다. 작가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임성희의 작업실 벽에는 작가의 작품과 함께 두 아이들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임성희는 어머니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과 낙서를 보면서, 자신도 꾸밈없이 자유롭게 선과 색을 행위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싸이 톰블리(Cy Twombly)가 연상될 법한 자유로운 선과 영문 글자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파울 클레(Paul Klee)나 호앙 미로(Joan Miro)와 같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조형들이 화면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특정한 어떤 목적이나 주제를 갖기 보다는 아이들의 시선과 표현에 주목하였기에 가능한 결과물일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에게 주는 휴식이기도 하다. 눈에 힘을 주어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를 지나, 주변을 감싸 안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스러운 행위로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그렇기에 임성희에게 있어 도자에 담은 표현들은 행복과 휴식을 담고 있는 동시에,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한다.

▲ 임성희, 시간의 공기
44.5x68.5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아이들의 달
45.5x45.5cm, Acrylic on Canvas, 2019

▲ 임성희, 하늘로 열린 창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19

더 밝은 세상을 위하여...

근작에서 임성희는 도자 속에 밝은 빛이 영롱한 둥근 구슬들도 함께 넣었다. 이 구슬들은 가을 나무와 함께 하기도 하고, 도자 속 세상을 떠다니기도 한다. 작가 임성희에게 이 구슬들은 자신의 과거이자 현재의 기억을 나타낸다. 어릴 적 어머니는 딸이 만들었던 작은 소품들을 항상 항아리에 모아두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이어 지금 엄마가 된 작가는 아들이 만들어오는 작은 예술품들을 항아리에 모으고 있다. 이렇듯 임성희에게 항아리 혹은 병 속에 담긴 색색의 구슬들, 함께 있는 선과 색면 그리고 돼지는 작가의 개인적 기억이자 현재 만들어가는 사랑의 행위이기도 하다.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임성희의 행복한 돼지의 모습과 추억의 구슬이 그 답이 될 것이다.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밝게 살아간다면, 그 빛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 행복한 꿈을 꾸는 돼지처럼 즐거운 추억을 마음 속에 가득히 안고 산다면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고 나의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돕는 다면, 적어도 치유할 수 없는 슬픈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몇 해 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과 무관심이 모인 결과였던 세월호 사건에서처럼, 어른의 말을 믿었던 아이들의 무고한 죽음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만한 밝은 세상을 꿈꿔본다. 그러한 희망을 품고 임성희는 오늘도 세상에 작은 불빛을 던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마침 복을 가득 주는 돼지해를 곧 맞이하게 되는 지금, 우리도 임성희의 돼지와 함께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