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희망을 꿈꾸며 노랑꽃 가슴에 품어오는가
사랑을 생각하여 분홍꽃 눈빛에 담아오는가
꽃대궁에 올라앉은 수천 개의 황금꽃분들이
후두둑 만들어내는 밀실, 그대의 헤테로토피아
꿈꾸는가 지금 그대

그는 갇힌 자였다. 부서진 그의 내면은 오랫동안 떠도는 자였다. 그러나 그에게 카메라가 있었다. 그가 응시하는 카메라의 이미지들은 결국 ‘자신’을 응시하는 슬픔의 편린들이다. 그의 사진 작업은 스스로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곳으로부터의 탈출이었고,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다. 인간은 위기 속에서 서성이는 존재다. 평범한 일상조차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은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의 애도는 길었다. 집으로 가는 정다운 거리,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 해질녘 피어나는 저녁밥 짓는 냄새. 이 익숙한 것들로부터 그가 유폐되었을 때, 사진은 치유의 길이었다. 세상은 흔들렸으나 그는 카메라를 들고 걸었다.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80x120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80x120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116x200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85x85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85x50cm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순간과 영원의 경계에서 그는 이미지를 붙들었다. 그가 태어난 1960년대, 청년기였던 80, 90년대 산업화시대는 가난했고 우울한 시대였으나 찬란한 밀레니엄시대가 열리던 그의 2000년대는 그보다 더 참혹했다.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모럴들은 그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잃어버린 자였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묻지 말라. 우리는 모두 ‘그 무엇을’ 잃어버린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꽃을 찍는다. 그의 꽃들은 매우 감각적이다. 언제든지 일상에서 만나는 꽃이다. 교실 탁자에서, 은은한 불빛아래 카페에서, 혹은 길섶에서. 그러나 그의 꽃들은 일상의 Reality를 벗어나 새로운 환타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진작업은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가를 보여준다. 그가 사용하는 다중노출은 수없이 반복되는 그의 생각들, 다른 차원으로 세상에 다가서고자 하는 그의 내면적 갈망이며 충동이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시선에는 작가자신의 자의식이 투사된다. 무의식적인 희망이다. 데카르트 이후 시각의 본질은 단순한 지각 차원을 넘어선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재해석한 재현인 것이다. 카메라는 시간의 영역을 무한하고도 확장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근대의 선물이면서도, 21세기 현대미술에 있어 놀랍고도 매혹적인 최고의 사유매체로써 자리잡았다.

꽃은 그가 숨어드는 공간이며 안식의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유토피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라면, 헤테로토피아는 완벽한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 강요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난 반(反)공간이다. 장소 밖에 있는 곳, 현실화된 유토피아다. 아이들이 숨어든 다락방, 작은 텐트, 거울, 도서관, 어떤 작은 카페, 노란 등불이 있는 밀실처럼 모든 강요에 맞서는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이다.

그의 꽃들은 프레임 가득 꽃잎뿐이다. 이파리도 대궁도 사라진 꽃의 본질 그 자체다. 그는 꽃을 통해 묻는다. 세계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슬픔이란 무엇인가. 그는 고통과 슬픔의 이유를 밝히려거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대답 대신 이미지로써 꽃을 피울 뿐이다. 그의 꽃들은 기품있게 피어난다. 유폐된 그를 세상으로 걸어 나오게 한 그의 꽃들은 다시 피어 그의 세상을 환희로 이끌어낸다. 렌즈는 물성을 다르게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렌즈 속에서 그의 꽃들은 피었다 지는 공허한 운명, 존재의 유한한 실체를 변모시켜 우리 앞에 영원한 꽃으로 피어난다. 화면 가득히 채운 그의 꽃은 영원한 우주로서 그를 품는다.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80x120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100x150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80x120cm

▲ 서동훈, fantasy gate to reality
Pigment Print, 50x85cm

작가노트 | 현실로 가는 환타지 문
나는 현실로 들어가는 비밀의 통로를 보았다.

버추얼 리얼리티 (virtual reality)

언제부터인지 나는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듯했다.
그렇다.
나는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철학자 플라톤 도 현실이 감각에 비친 가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내면의 시린 아픔과 슬픔 욕망 게임같이 잘 짜여진 가상세계.

숨 쉴 수 없이 찾아드는 공포와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간들

이는 분명 거대한 특수효과 속의 가짜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나에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현실의 세계는 존재할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걸까?
그곳엔 기쁨과 환희만 존재할까?

믿지 않겠지만 난 그곳으로 가는 열쇠를 사진에서 찾은듯하다.

셔터를 누르면서부터 난 화사한 꽃들과 정이 들고
많은 대화를 나누다 그만 그들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어느날 그들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날 깊숙이 받아들였다.
순간 난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향기 가아득한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열락의 세계
눈을 감아도 눈을 떠보아도
온통 세상은 환희로 가득 찼다.
그제 서야 난 자유를 만끽한.
현실의 세계에서 환타스틱한 세계를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