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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F/10 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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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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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것이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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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ler - 송채례展
 전시기간 : 2010. 11. 04 ~ 11.10
 참여작가 : 송채례(Song ChaeRye)
 오 프 닝   : 2010. 11. 04 PM 6:00
 


『 Traveller - 송채례展 』

Song Chaerye Solo Exhibition :: Painting











▲ 송채례, Traveller-8
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0









전시작가 송채례(Song Charye)
전시일정 2010. 11. 04 ~ 2010. 11. 10
초대일시 2010. 11. 04 PM 6:00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9:00
∽ ∥ ∽
모리스갤러리(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T. 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 자유와 실존에 관한 채록으로서의 여행
- 분석을 통한 그 의미성과 가치의 재고

홍경한(미술평론가)


1. 평범한 두 가정주부가 가방만 챙겨든 채 모처럼 의기투합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단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된 여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휘말리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얼떨결에 치한을 살해한 것이 원인이 되어 도주를 이어가고 경찰에 쫒기는 가운데 벌어지는 연이은 사건들은 평화로운 여행을 공포의 시간 속으로 인도한다. 단 며칠만이라도 지루하고 획일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된 이들은 마지막으로 “This is just the first chance you′ve had to really express yourself.”라는 말을 남긴 채 후회 없는 ‘순간’을 ‘영원’으로 기록한다. 그렇게 그들은 그랜드 캐넌의 벼랑 끝을 힘껏 질주하며 그토록 원했던 '자유'라는 마지막 선물을 스스로의 삶에 선물한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1991년 영화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에 등장하는 줄거리이다.

일상이라는 굴레에서 느끼는 여러 편견, 보편화된 이기심 등에 둘러싸인 채 육체적, 정신적 압박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여행'이라는 카테고리와 '자유'에 대한 심리적 갈망으로 묶어낸 이 로드무비는 약 20년 전에 만들어진 고전(古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흥미로운 전개, 긴장감을 자아내게 하는 배우들의 열연, 시공을 초월한 동질감 등은 아직도 이 영화를 다수의 기억 속에 잔재케 하는 이유로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scene) 곳곳에 배어있는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이 타자 개개인의 마음에 덧칠되면서 '실존'에 대한 자문이 유효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존속성을 높이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 송채례, Traveller-13
60.0x30.0cm, Acrylic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1
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14
24.2x33.4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10




2.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송채례의 <여행자(Traveller)> 연작을 접했을 때 받은 첫 ‘인상(印象)’이 바로 오래전 <델마와 루이스>를 시청했을 때 느꼈던 여운(餘運)과 비슷했다. 사면이 벽으로 메워진 큐브(CUBE) 같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만이 구속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의문과, 능동적인 자아를 다양한 이유로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속박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하나의 화면에서 오버랩(overlap)된 듯한 분위기가 그의 작품과 처음 대면한 이후의 여음(餘音)이었다는 것이다. 원색의 컬러와 구상적인 이미지에 가려있긴 했어도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한 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에 관한 자문이 녹아 있음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식의 물리적 거푸집에 갇히지 않을 권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아가 낙점한 좌표(座標)를 따라 '나'라는 실존체가 표상(表象)화될 수 있는 권리를 뜻함을 그의 작품들은 이구동성으로 언급했다.

그렇다고 송채례의 그림들이 <굿바이 바파나(Goodbye Bafana)>와 같은 거국적인 행동으로서의 실천적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담보하고 있다고 여겨진 것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주체적 사유의 결과가 타블로(tableau)로 객체화되어 하나의 지시체(referent)로 존재했지만, 그 내부엔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현대의 인간소외 현상에 주목하는 작가적 시각과, 이에 대한 대처로서 주관성에로의 회귀 등이 대표적인 이미지인 ‘가방’이라는 명사에 차곡차곡 담겨져 있었다는 게 보다 옳았다. 그리고 그건 대개 상징적이었고 또한 사변적 내레이션(narration)이 강했다. 이중 넓은 공간, 대비적인 컬러, 초현실적 다양한 이미지들로 조합된 <여행자 1>을 비롯한 <여행자 8> 등, 그의 몇몇 작품들은 흡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이데스(Danaides)의 통'처럼 아무리 부어도 끝내 들어차지 않는 무엇, 혹은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가 언급한 ‘소유로부터의 독립’을 오히려 역설적(逆說的)으로 다루는 방식으로서의 자유를 탐미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남다른 가치를 부여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게 만드는 여러 상징적인 도상들은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얽히고설킨 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탈을 종용하는 메시지로 충분했으며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그것을 실어 나르는 전령(傳令)처럼 느껴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외피적 단상들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송채례 작품들의 불변적 특징이랄 수 있다.

헌데 그의 작품을 보다 천천히 곱씹어 보면 그 내부엔 시공의 제약을 벗어난 존재에 대한 의문과 주관적 관념이 자아를 스펙트럼(spectrum)으로 훨씬 더 진하게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객체별 받아들임이야 어떻든 그가 만들어낸 화면엔 조형적, 미적, 철학적 알레고리(allegory)를 완성시키는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 내면의 심상의 언어들이 포박(捕縛)되어 있고, 자신을 기준으로 한 인간에 대한 시선과 실존성에 대한 포괄적 관심, 그리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과 기억의 회로가 그리드(grid)처럼 직조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그의 캔버스에는 화산처럼 분출하여 발화된 동시대 인간들의 욕망마저 현상학적인 관점 아래 서술되어 있다. 이 모든 조형원소들은 오늘날까지도 송채례의 작품을 이끄는 에너지가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창작세계를 조금 더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음을 발견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송채례가 지니고 있는 조형언어의 본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확인하면서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록 글이 다소 길어지지만, 그래서 읽는 이들이 다소 피곤하겠지만(솔직히 이 글이 도록에 전부 게재될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향후를 위한 선행으로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었다.






▲ 송채례, Traveller-3
97.0x97.0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6
53.0x45.5cm, Acrylic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9
33.4x24.2cm, Acrylic on Canvas, 2010




3. 우선 그의 작품들은 내용적으로 '여행'이라는 행위적, 언어적 기호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고 은유적 형식을 지닌 환영적인 이미지로 체화하고 있음을 목도하도록 한다. 그것은 곧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직-간접적 경험(실행)의 문제요, 실존의 문제이며 동시에 다층적 예술창작의 문제로 연장된다. 여기서 실존은 일종의 개념인 시피니에(signified)로 가라앉고, 단어 '여행'은 재차 언어 체계 내에서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 의미가 형성되는 형식인 시피니앙(signifier)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임을 지시한다. 이를 쉽게 말하면, 그가 그려가는 그림들은 있는 그대로를 모방(또는 재현)한 것이 아닌, 내면에서 재해석된 심상의 이미지이며, 이는 여행지 자연의 근원을 외시적인 것으로 보면서 내적 존재성을 담지한 공시적 관점을 다시 인상적인 형과 색, 시간의 공간성 안에서 버무려 자신만의 신화적 층위로 나아가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의 이러한 회화적 접근방식은 그의 작품 내에서 인간의 내적 고뇌와 사상을 ‘본질(essentia)에 대한 현존재(Dasein)’로 정의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주의적 자세의 견지와 잡지광고에서 따온 이미지나 만화의 주인공들과 같은 ‘심오하지 못한’ 것들도 '심오한' 미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긴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을 포함한 팝계열 작가들이 주창한 형식미로 양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작가는 이러한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의미작용(signification)의 한 사례로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실존주의 미술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를 예로 제시하며 보다 의미론적인 자세를 꾀한다. 이에 내용적인 측면에서 호퍼와 송채례의 작품이 어떤 상호성을 지니는지 보면, 먼저 일상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는 정경들을 시적인 감각 아래 화폭에 옮겼던 호퍼는 인상파들(그중 ‘에드가 드가’와 같이 실내에 천착하지 않고 자연 등 외부세계를 그렸던 외광파(外光派))이 대자연과 인물을 색과 점으로 분해하여 빛의 찬란함과 환희를 담아내려 했던 것과는 달리 마르지 않는 빛줄기 끝에 황량하고 공허한 도시를 올려놓은 예술가였다.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의 근간(根幹)조차 스스로의 고독감에서 찾으려 했던 것처럼 여러 등장인물들을 독백하는 듯한 모습으로 선보이며 인간의 실존적 의미와 존재성에 대해 끊임없는 자문(自問)을 내뱉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것들은 때론 명상적이었고 상징적이었으며 정적이고 유연치 못해 역동성과는 거리가 먼 여백을 전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그 여백은 수평 및 대각선을 따라 흐르는 긴장되면서도 안정된 공간구성, 기하학적 형태 위에 세워진 무표정한 형상들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빛과 어둠, 안팎의 대조, 외로운 인물 등의 상반된 이미지와 같은 공감각적인 조형언어에 부합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표현방식에서의 문제가 아닌,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해온) 인간 본연의 고독한 순간들과 친절하지 못한 불편함, 그래서 더욱 모호하고 공허한 ‘관계’에 방점이 있는 것이었다. 송채례의 <여행자> 연작에서도 그러한 관계성은 적당한 합일을 도모하며 전개된다. 언뜻 보기에도 작가의 지시체는 의도한 방향에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여행자>라는 일상의 경험세계에서 실존적 의문을 구동시키는 동기가 화면 곳곳에 부여되고 있음은 송채례 작품의 지향성을 더욱 명료하게 꾸며 놓는다. 그러나 호퍼 그림의 진정한 가치인 ‘공감의 순환’에 이르면 원활한 흐름은 유속을 더디 한다. ‘여행’이 평범한 일상의 개인에게 실존적 의문과 대면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예술가에게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 화두로 부족함이 없지만 호퍼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들, 다시 말해 외면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끈끈한 탐구, 인간 존재성에 대한 진한 애정과 연민 등의 진득한 소스들은 비교적 유추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의 초상(너무나 절대적인)'이라는 절대적 공감이 송채례의 밝고 화사하며 서술성이 강한 화면으로 인해 되레 길을 잃은 채 표박(漂泊)되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린 호퍼의 그림을 보며 어딘가 모를 친숙함과 낯설지 않음을 맛본다. 이는 송채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맛과 유사하다. 하지만 호퍼의 그림은 거대해진 도시에 의해 내몰려진 작고 힘없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자아의지가 투영된 인간존재에 관한 문제를 명료하게 출현시킨다. 반면 송채례의 작품에선 그러한 본질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통로의 너비가 넓지 않고 의도와는 달리 공명(共鳴)의 여울이 효과적으로 일렁이지 않는다. 어느 부분에선 초현실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이입되어 있으나 그 본질인 '인간의 욕구에 대한 해방'까지 이르기엔 넘어야할 산이 높으며, 연결의 인과를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뜨거운 실존'을 받아들이기엔 아쉬운 부분이 발견된다.






▲ 송채례, Traveller-10
40.9x31.8cm, Acrylic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11
47.0x38.0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5
53.0x45.5cm, Acrylic and on Canvas, 2010




4. 이와 같은 결과는 공감의 부수적 실체가 두드러지지 못한 채 배회하게 하고 따라서 관자들을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회화의 물리적 제약을 답습하도록 한다. 물론 그는 이와 관련해 형식적인 측면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어법을 연구한 흔적을 내보이며 자신의 의도를 어느 정도 상쇄시킨다. 작가 스스로 작가론에서 밝히고 있듯 그것이 지닌 외면성이 자신 작품의 프레임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호크니의 작품들과 송채례의 작품에는 엄밀한 관점에서 일정한 틈이 놓여 있다. 일단 데이비드 호크니, 로이 리히텐슈타인,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와 같은 팝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서 현대생활에 강한 충격을 주는 대중문화의 모든 현상을 닥치는 대로 묘사했다. 그들은 구태의연한 사회질서를 비판하고 예술이 사회에 접목되기를 바랬으며 노골적 혹은 직접적으로 매스 미디어에서 사용된 기법과 언어들을 자신의 그림으로 적극 끌어들였다. 그것은 매우 대중적이었고 난해한 인지를 거부했으며(당대 환경과 프란츠 클라인, 잭슨폴록 등으로 대변되는 기하학적 추상주의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이 역시 그리 어려운 이해는 아니다.) 더불어 사회적이었다.

이중 송채례의 작품은 형식상 호크니가 60년대 팝아트의 기수로 부상할 당시의 그림과의 연계를 엿보이고 있다. 즉 비틀스가 나타나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언더그라운드 아트가(underground art) 슬그머니 태동준비를 서두르던 당시 공간성에 천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창의하던 작품에 비중을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호크니는 특유의 넘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한 정신으로 사진을 포함한 무대장식이나 일러스트레이션까지 매우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댔던 인물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심지어 『명화의 비밀』처럼 역대 화가들의 작품을 해설하는 크리틱(critic) 역량까지 보여주었다. 그런 그도 영향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얘기지만 호크니는 피카소를 통해 예술가란 일정한 틀에 갇힌 냥 한 가지 방법만을 가져서도 안 되고, 그 안에 머물러서는 더욱 안 되며 가장 가능한 다면적 방향에서 새로운 표현방식을 꾸준히 탐색해야 한다는 예술관을 취하게 된다. 피카소의 일생을 거쳐 일궈진 엄청난 작업량과 시기별 변화를 보면 그의 이러한 판단은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앞서 기술한 송채례의 조형성과 호크니 간의 작업 간엔 작은 간극이 노출된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미 진행되어 완성된 형식은 새로운 형식의 침투를 꺼려하고 그것이 독창적인 분석을 내놓지 않는 한 형식의 반복 이상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송채례, Traveller-7
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0







▲ 송채례, Traveller-12
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0




5. 현실을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선택할 따름이었던 팝의 근간을 생각한다면 송채례 작품의 거리는 보다 가시적이게 된다. 팝 쉬르리얼리즘(pop surrealism)에 근접해 있는 듯한 기운이 타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새로움은 운명이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기하학의 기원』에서 첫 기술한 이후 현대미술의 중요한 철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차이와 연기, 즉 '차연'을 작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향후 그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위한 반드시 숙지하고 넘어야할 심화가 요구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하나의 맥락(실천적이든 언어적이든, 혹은 그 전부가 동시 다발적이든)을 끊임없이 유예시켜 보편적 개념을 달리토록 하는 역동적인 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채례의 그림은 필자가 처음 보았을 때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한 것처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장소와 시간, 공간의 지층을 돌이키게 하고 무한한 상상의 창을 캔버스에 투사해 다양한 지각을 일깨운다, 그것이 호퍼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허무한 인간관계나 멜랑콜리한 감정, 고독함과 희망을 버무린 파편적인 언어들처럼 그의 화면에서도 미적 완성도를 높이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누구든 그의 작품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네 마음 속 어딘가 숨어 있던, 혹은 저장된 기억이 재생되고 재생된 기억은 현재를 반추하며 변하지 않는 심리적 공유를 불러온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더구나 사실주의에 입각한 형상으로 인한 어디선가 낯익은 듯한 익숙함과 친숙함은 그 공유를 촉발하는 원인이 되며, 이것이 송채례의 그림의 특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본래의 자기가 상실되어 있는 무자각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자각적 존재에 도달하려는 정신성은 근본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확장시키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필자는 송채례 작품의 여로(旅路)가 시각적 인지성에서 탈피해 청음까지 어우르는 방향에서 발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다른 장르의 예이지만 조성음악의 근본부터 무너뜨린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나 스트라빈스키(Igor Fedorovich Stravinsky)의 원시적(?)인 발레곡 <봄의 제전>이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와 있는지 등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조타로 미적 창의를 실현시켜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송채례의 작업은 지금도 주제의식이나 개념적인 측면에서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술의 가치를 보다 견고히 획득하려 한다면 지금은 필연적 기대라는 시그널(signal) 에 보다 부응하는 것이 마라톤 같은 예술가의 삶에 훨씬 긍정적인 변화를 갖고 오지 않을까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것이 이처럼 장문으로 영화, 음악, 미술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기술한 이유이다.


작가노트 |
여행은 삶의 새로운 계기로 작용 한다. 그리고 창조적인 행위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탈이나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것이 창조적 삶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여행은 인생에서 갇힘과 열림을 반복하는 행위이다. 현대인들은 일상이라는 시공간에서 자발적으로 갇혀있다. 여행은 더 넓은 세계로의 나감이다. 구태의연하고 틀에 박힌 삶에서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은 자유와 창조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갖는다. 나의 작업은 인간이 일이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시적 일탈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어진 여건에서 벗어나 가끔씩 틀을 깨고 나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 것이다. 이런 일탈을 통해 나는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나에게 있어 일탈은 작업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일탈은 본래의 길을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거나 새로이 만드는 행위들도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탈과 창조와 문화와 예술행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개념이 된다. 일상의 일탈을 통해 현실을 성찰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듯 여행에도 즐거움과 슬픔 분노와 안타까움의 필연성을 내재한다. 삶과 여행은 그 여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동일한 의미층위를 갖는다. 삶의 여정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계속되듯이 의미를 갖는 작업으로서의 여행 역시 존재론적인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행길이나 인생길이나 여행자의 존재론적 시간만이 달라진다. 삶 속에서, 인생길에서 수많은 사람과 관계하고 경험하듯이 여행 역시 그러하다. 여행에는 ‘아직 다가오는 않은 것’에 대한 설렘과 기원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