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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 이창희展
 전시기간 : 2010.11.11 ~ 11.17
 참여작가 : 이창희(Lee ChangHee)
 오 프 닝   : 
 


『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 이창희展 』

Lee Changhee Solo Exhibition :: Painting











▲ 이창희, Acrylic on Canvas, 145.5x112.1cm, 2010









전시작가 이창희(Lee Changhee 李昌熙)
전시일정 2010. 11. 11 ~ 2010. 11. 17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9:00
∽ ∥ ∽
모리스갤러리(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T. 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 체표된 인물에 숨겨진 인간의 존재성
-작가 이창희의 근작을 중심으로

홍경한(미술평론가)


1.
사람 간 판단은 어쩌면 일상이다. 싫든 좋든 하게 되고, 받게 된다. 그런데 그것의 기준은 대개 겉모습, 첫인상, 밝혀진 직업을 비롯한 행색 등 특정함과 관련된 부수적인 것들에 머문다. 그러므로 그게 과연 누군가의 전부이거나 실체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진실인지역시 단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피(外皮)에 불과한 시각적 이미지와 주변적 증거들에 상당히 의존하는 오류를 범한다. 문제는 그 의존이 타인의 존재성은 물론 심지어 존엄성마저 규정하는 단초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성적 인식과 논리적 재단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님을 인지하면서도 현실에선 복기를 거듭하고 만다.

작가 이창희 작업의 화두는 이 지점에서 생성되고 펼쳐진다. 관계를 전제로 갈수록 희석되어 가는 인간의 존재성에 대해 탐미하며 존엄성에 대한 자문을 작화적 시점 아래 전개한다. 실제로 그의 근작들에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의 의도를 살필 수 있으며, 진실이 부재한 현실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특히 “인간적 오류에 대한 자각과 이해와 수정(2008년 겨울 작가노트 中)”이라는 내레이션이 복화술처럼 배어나오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창희의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연작들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목구비가 생략된 인물들이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들은 남자든 여자든 성별의 구분은 어느 정도 가능하나 인물의 생김새를 디테일하게 유추하는 것은 어렵다. 얼굴의 중요한 부분이 증발된 상태이다 보니 표정을 알아차리기란 불가능하고, 그들 각자가 지닌 사변적 히스토리나 정체성을 가늠한다는 건 훨씬 곤란하다. 더구나 이 인물들은 타자의 감정이입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해, 그의 작품 속 주체들은 더 이상 특정인의 생김새나 됨됨이를 갖춘 실존으로서의 구성을 갖추지 못한 채 하나의 객관적 피사체로 남게 된다. 물론 이는 작가의 의도요, 고의적인 생략에 따른 결과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과감한 회화적 접근법인 셈이다.






▲ 이창희, A LOVE BOMB
Acrylic on Canvas, 91.0x72.7cm, 2010







▲ 이창희, Choice
Acrylic on Canvas, 162.0x130.3cm, 2010







▲ 이창희, Acrylic on Canvas, 91.0x72.7cm, 2010







▲ 이창희, Who am I... who I am
Acrylic on Canvas, 130.3x97.0cm, 2010




2. 작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혹은 누군가 인식cognition하고 있는) 인물의 눈과 코, 입이라는 즉시적 판단요소를 누락시키고 그 자리에 화려하게 만개한 꽃의 도안을 세밀한 필법으로 새겨 넣는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시각적 관습에서 인위적으로 떨어져 나와 판단의 기초적 근간(根幹)을 캔버스 너머로 추방시켜 버린다. 의식(意識)하고 지각(知覺)하는 작용의 구분요소, 시각적 변별성을 완전히 거세하는 대신 꽃이라는 상징을 앉혀 확장된 관념을 선보이며, 이는 인물과 관련한 일정한 개념의 테두리에서 탈범주해 꽃이라는 모티프를 통한 작가주의적 관점을 천착시키는 경로로 바라볼 수 있다.

작가는 수를 놓듯 외곽선을 꼼꼼하게 잇는 방법으로 대상을 실현시키고 전통 자수와 조각보에서 빌려온 짧고 화려한 색선과 집적(集積)된 색의 조합으로 인물을 완성해 간다. 특성상 꽤나 긴 시간을 요하는 이 과정은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인간에 대한 의미의 기록이자 그들의 얼굴을 지워내고 그들 각자 내부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춰내 본질을 탐하는 채록의 성질을 지닌다. 그리고 이 모든 프로세스는 지엽적이거나 불특정한 인물을 알레고리(allegory)화 시킴으로써 되레 인간의 포괄적 상대성과 아우라(aura)를 두드러지게 하는 역설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필자의 흥미를 끈 것은 얼굴의 특징이 사라졌을 때 빚어지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에서처럼 가치구분의 주요 근거가 사라지면 타자의 감정은 배척되고 실존은 배회하게 되며 익명성은 부각된다. 누군가는 분명히 알고 있는 인물이겠지만 감정이 들어설 근거 찾기에 실패한 탓에 평가는 사유를 따르지 못하게 된다. 반면 그 자리엔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과 마음이 새겨지게 된다. 대조적 존재에 대한 의미를 각인하게 된다. 이창희의 근작들은 이러한 지각을 뚜렷이 증명한다.

이창희는 이와 같은 현상을 예술표현의 목적으로 삼는다. 우회적이긴 해도 그 목적은 인간 자체가 물체화, 코드화 되어 가는 현재를 주목하게 하며 나아가 그런 것이 일상적인 동시대에서 개인의 존재란 어떻게 반추되는지 고찰토록 유도한다. 이를 분석하면 보편적 의미규정에 대한 디딤목을 벌목함으로서 존재감에 대한 자문(自問)이 투영된 역설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결과물에 해당하는 그의 작품들은 구체적인 묘사로 실체를 정의하기보다 ‘비움’으로서 실체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시선을 고정시키는 또 하나의 체표(體表)적 이미지는 증발된 얼굴에 가득 채워진 ‘꽃’이다. 대상의 얼굴 전반을 감싸고 있는 이 꽃은 일단 숫자나 단어, 어린 시절 자주 접한 공구(工具) 등 그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기표의 중심이자 작품의 방향을 이끄는 동체로 작동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생성과 소멸(꽃이 피고 지는 것과 삶의 성쇠는 고저와 시공의 개념에서 확실히 맞닿는 부분이 있다.)을 뜻하고, 이미지화 한 표상들의 순환(관계성과 소통, 교류 등)을 함의하기도 한다. 물론 혹자에겐 무한한 상상을 담을 수 있는 매제로도 기능할 수 있는 도상이다.

하지만 꽃이라는 이미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도 기술했듯 가시적 실체의 전환, 다시 말해 실제가 분해된 익명성에 관한 작가의 심도 깊은 고찰을 포함해 고착된 특징들이 거세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재성에 따른 순간의 지연과, 그것을 통해 스펙트럼처럼 번지는 다양한 치환적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는 표상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이 꽃은 분명 타인의 시선을 부동케 하고 정지시키는 요인이지만 관자의 사고를 다른 지점으로 전향토록 만드는 조타역할을 함은 물론, 작가가 지정한 좌표를 상징하는 언어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언어를 관통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거처(居處)는 갈수록 잃어가는 실존의식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에 관한 서술이다. 외면적인 것에 심한 기울기를 드러내는 우리네 관계에 관한 숨겨진 일깨움이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소외되거나 차별되어지거나 격화되어가는, 그러면서 의식적이거나 습관적으로 잃어가는 인간의 상대적 존재에 대한" 따뜻한 조언이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화면에서 이면(裏面), 다시 말해 익명을 보장받고 나서야 겨우 마음 한편을 내려놓는 도시인들의 두려움이 대리물로 체화 된 채 부유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다만 자신의 속을 들키고만 이가 동일한 상태에 놓인 누군가와 재회하는 것을 사양하는 우리네 초상을 은유적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기에 확연한 읽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 이창희, 꿈을 꾸다
Mixed Media on Canvas, 41.0x31.8cm, 2009







▲ 이창희, 나를 보아주세요
Acrylic on Canvas, 116.7x91.0cm, 2010







▲ 이창희, 복주머니
Acrylic on Canvas, 91.0x72.7cm, 2010







▲ 이창희, 순수로의 회귀
Acrylic on Canvas, 91.0x72.7cm, 2010




3. 사실 얼굴이 생략된 이창희의 작품들은 장황하게 내뱉는 서술보다 관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배려하고, 빽빽하게 채워진 것보다 더욱 다양한 의미들을 읊도록 하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시공을 넘나든 이 장소에서 사람들은 어떤 실재가 아닌 상상과 조우하고 소통(생명의 전령이며 동시에 우리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물로 그려진 나비처럼)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며 그의 그림을 해체할 때 이탈하는 부산물들(버려지는 고정적 관념이나 일반적 편견,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시도해왔던 가치 판단에 대한 노력이 포기되는 현상, 존재성과 관련한 사유의 여백)을 획득한다. 이것은 타블로라는 회화의 가치 이상의 잉여적 수확이다. 그 외에도 이창희의 작품들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작가의 사고이자 주관적으로 작성되어진 사유의 기록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비록 급속한 반전이나 극적인 푼크툼(punctum)과 유사한 징후는 크지 않지만 작업과정자체가 인간이 지향해야 할 균등한 의식과 배려, 존중과 같은 진실한 바로미터를 제시하려는 여적임엔 틀림없다.

아무튼 모두가 동일한 수용을 허락지는 않겠지만 그의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시리즈는 단순한 보임 혹은 드러남 이상의 철학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의 그림에서 외적 요인을 벗겨 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상호적 존엄에 대한 차등의 불편함의 직시, 그 반대선상에서 부유하는 평등주의라는 속살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 관련한 여러 잡다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껍데기를 벗어나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작가의 정신세계에 밀도 있게 다가설 수도 있을 것이다. 화려한 원색의 컬러에 꼼꼼한 집적성,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탓에 독해가 쉽진 않겠으나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불가능한 것 역시 아니지 않나 싶다.






▲ 이창희, 순수한 영혼
Acrylic on Canvas, 73.0x61.0cm, 2010







▲ 이창희, 아버지의...
Acrylic on Canvas, 130.3x97.0cm, 2010







▲ 이창희, 자유로운 영혼
Acrylic on Canvas, 162.0x130.3cm, 2010





   

이창희, 화해1, 화해2
Acrylic on Canvas, 324.0x260.6cm, 2010




작가노트 |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인간에 대한 존경의 메시지 |
현대사회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거기에 준하여 살아가며 그것으로 그 사람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바라본다. 안타깝게도 정작 중요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상대적 존경과 배려가 잃어가는 시대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소위 문화적 진화를 해가면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현실은 거기-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순들-에 순응하며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여가는 사람들의 습관화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진화인가. 무한의 경쟁 시대이며 자기주의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정작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상호적 존엄이 마땅하면서도 차등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정치, 경제, 문화, 성 등으로 소외되거나 차별되어지거나 격화되어가는, 그러면서 -의식적이거나 습관적으로-잃어가는 인간의 상대적 존재, 존엄에 대한 꾸준한 자각이라도 있지 않다면 우리는 더욱더 휘몰아치는 인간적 오류의 진화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과연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인간적 오류들.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갈등 등에서 우리가 꾸준히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문화 진화에서의 오류에 대한 자각과 이해와 그리고 수정'일 듯 하다. 인간의 평등적 사고와 배려, 성별과 정치, 종교, 경제, 문화적 오류들의 기본적 바탕에 있어야 할 그 기본적 사유, 인간에 대한 인간 존중이 어찌 보면 현대 모든 문제들의 기본 해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