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진기展 』

Na Jinkee Solo Exhibition :: Painting






▲ 나진기, 행복이야기, 162.2x260.6cm, Mixed Media





전시작가 ▶ 나진기(Na Jinkee)
전시일정 ▶ 2013. 05. 23 ~ 2013. 05. 29
초대일시 ▶ 2013. 05. 23 AM 11:00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8:30(주말 18:00)
∽ ∥ ∽
모리스갤러리(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T. 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 숭고한 행복을 담아내는 모더니스트

★조상영(미술학 박사, 평론)

Ⅰ
사람마다 평안한 장소와 시간, 상황이 있다. 작가 나진기는 금요일 저녁 여유 있게 그림을 그리면서 독특한 기법을 발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작가는 세상을 이기기보다는 순리를 중요시하기에 복잡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며 단순한 관계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물감 냄새와 땀 냄새가 번벅 되어 만들어 내는 그의 투박한 도자기들에 꽂힌 꽃들과 자연 이미지들은 숭고와 행복을 담아내는 코드가 되어 잔잔한 평화를 선물하고 있다.

나진기의 초창기 그림들은 스승의 반구상적 작업 영향을 받았지만 다소 무거운 느낌의 인물과 풍경으로 집약된다. 2000년경부터 작가는 흙, 씨앗, 꽃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흙의 느낌을 주기 위해 거칠거칠한 마티에르 위에 짙은 고동색을 사용하여 단순한 색면으로 처리하고, 씨앗이 자란 화사한 꽃에 어느 정도의 사실적 표현을 함으로써 상상과 추상이 더해진 숭고한 모던적 작품 경향을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나진기, 행복이야기14, 45.5x53.0cm, Mixed Media

▲ 나진기, 행복이야기23, 45.5x53.0cm, Mixed Media

▲ 나진기, 행복이야기29, 45.5x53.0cm, Mixed Media

작가가 그리는 흙과 씨앗, 꽃의 원천은 여러 체험에서 시작되는데, 이는 중?고교시절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꽃 농장에서 일손을 돕던 추억에서 출발한다. 이후 성인이 되어 어린 10대들이 땅에 꽃을 심는 것을 보고 꽃의 성장과 인간의 성장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지금의 회화적 사유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생의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 꽃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투박한 도자기에 꽂힌 화사한 꽃과 자연 이미지는 ‘행복 이야기’로 확장 되었다.

작가가 말하는 ‘행복 이야기’는 무엇일까? 행복은 삶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과 위험, 공포와는 반대 개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고통, 위험, 공포 없이 행복을 느낄 수는 없으며,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행복 역시 고난과 충돌해야만 느낄 수 있는 양면적 감정의 쾌(快)를 갖고 있다.
나진기는 이 행복을 숭고한 기운으로 발산시키는 것 같다. 행복이 기쁨과 만족의 단계라면, 숭고는 ‘높음(hypsous)’ 즉 ‘격정적으로 솟아오르는 영혼의 고양’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숭고를 시인의 시어에 많이 적용하면서 ‘신적인 영감’의 소산으로 생각했는데, 작가의 작품은 시적인 색채와 감각적인 조형언어로 감성화 되어 있어 그 숭고함은 순수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연 앞에 서면 후련함을 동반한 행복감을 느끼면서 숭고함마저 든다. 들에 핀 꽃이든, 광활한 경관이든 시각적인 숭고함 차이는 있겠으나, 그곳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미스터리를 눈치 채는 순간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동일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숭고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적인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하여 탈아(脫我)의 심연에 젖게 해 엑스터시를 느끼게 하는데, 이는 버크(E. Burke)가 말하는 ‘환희’ 또는 안도감’으로서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경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이 된다. 다시 말해 작가가 오랫동안 주제로 삼아왔던 ‘행복’과 일맥상통하는 담론이 ‘숭고’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자연 이미지와 색조들은 숭고함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며, 전체적인 화면 느낌은 선(善)을 향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달리 말하면 심성 착한 사람들이 선행을 베풀고 있는 현장을 보며 흐뭇함과 행복함이 전달되어 동참하고픈 마음 아닐까 싶다. 이와 더불어 작가는 인간의 행복과 숭고를 꽃으로 말하면서도 인간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현실 너머 피안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명암법을 벗어나 독자적인 화면구성과 자율적인 색채를 구사하며 초월적 자연세계를 통한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깊이감을 동시에 함유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숭고는 “사물 속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함유되어 있다”고 한 칸트(Immanuel Kant)의 말처럼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린지도 모른다.

▲ 나진기, 행복이야기33, 91x116.8cm, Mixed Media

▲ 나진기, 행복이야기27, 45.5x45.5cm, Mixed Media

Ⅱ
보이지 않는 땅속에 묻혀있는 씨앗이 솟아나는 느낌, 그리고 어떤 꽃이 어떻게 피어날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할 때는 사실과 추상 중 어떤 방식이 좋을까? 작가는 오히려 사실과 추상으로 이원화시키기 보다는 절충적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 방식을 우리는 반구상이라 부른다. 독특한 회화성을 발산하는 나진기의 반구상 방식은 도자기와 꽃(꽃잎), 수직적인 나무 등의 형태와 색채를 대상과 결부된 구체적인 성질이 아닌 무형의 비물질적인 덩어리로 환원시켜 색채추상으로 진전시키는 접점에 있다고 보여 진다.

작품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고 상당히 복합적인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반구상적 조형성을 취하면서도 빠른 속도의 반복적인 드리핑으로 인해 오랜 퇴적층 같은 단단한 물성을 구체화시키는 동시에 다양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나진기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인 자기비판성과 평면적 환원을 내재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들은 추상으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흐름의 원동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경향은 스승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더욱 큰 임팩트는 인상주의적 사유가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회화의 새로운 형식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들인데, 특히 사진과 인간의 시각 차이, 순간적인 시각 표현과 초점에 따른 확연함과 흐려짐, 빛과 사물의 관계에 따른 재현 문제, 진정한 리얼리티의 문제 등을 오랫동안 고심한 화가들이다. 이 때문에 나진기의 작품에는 숭고나 행복의 감정이 녹아있으면서도 일시적이면서 덧없는 세속적 기쁨이 중층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경계를 허문다거나 다원적이고 개방적이며 표현 불가능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인상주의를 답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한 부분만을 떼어내어 이미지만을 부각시킨다거나 형태를 변형해 다른 구조와 재결합하여 숭고한 조형적?정신적 화면을 만드는 사유와 표현에 있어 독자적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심도 깊은 모더니스트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 나진기, 행복이야기28, 45.5x53.0cm, Mixed Media

▲ 나진기, 행복이야기25, 45.5x53.0cm, Mixed Media

▲ 나진기, 행복이야기31, 60.6x60.6cm, Mixed Media

Ⅲ
우리는 삽시간에 많은 정보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마법과 같은 과학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행복은 그저 신기루일까? 세상이 발전한다면 당연히 행복과의 거리감은 좁혀져야 하는데 역사와 행복의 함수관계는 비례하지 않는 듯하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행복을 “세상사가 흘러가는 동안에 훔친 짧은 환희로서의 즐거움”을 선호해야 한다고 충고하듯, 나진기의 투박한 도자기와 꽃, 자연 이미지들은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