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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진展
 전시기간 : 2015-03-12 ▶ 2015-03-25
 참여작가 : 김병진(Kim Byungjin 金炳榛)
 오 프 닝   : 
 



『 김병진展 』

Kim Byungjin Solo Exhibition :: Painting











▲ 김병진, Flowers-2, 100x70cm, 캔버스에 종이수묵, 2014








전시작가 김병진(Kim Byungjin 金炳榛)
전시일정 2015. 03. 12 ~ 2015. 03. 25
초대일시 2015. 03. 12 AM 10:30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8:00(월요일 휴관)
∽ ∥ ∽

모리스갤러리(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T. 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먹으로 펼쳐진 피안의 이상향
- 김병진의 먹 작업에 대한 고찰(考察)

황선형(모리스갤러리, 아트허브 대표)


흰 종이, 그 종이 위에는 먹물을 슬쩍 스친 듯한 갈필(渴筆)로 검디 검은 먹이 칠흑같이 칠해져 있다. 백자와 함께 어우러진 꽃과 풀들은 흰 면의 공간과 하얀 선들로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는 듯이 생기 넘치는 꽃과 풀들은 광채를 발(發)하고 있다. 어둠 속의 한줄기 빛은 얼마나 밝던가? 이 광채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 꽃과 풀을 마주하는 순간 반전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반전은 다름아닌 종이를 뜯어내 형상을 표현하는 김병진의 절묘한 조형 어법 때문이다. 검은 먹으로 칠해진 종이에서 백자와 꽃, 풀의 형상들을 뜯어내 드러냄으로써 작품을 완성하는 기발한 역발상((逆發想)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일명 ‘뜯어내기 기법’이다. 보통의 작품들이 흰 종이나 캔버스에 색을 칠해 채워가며 작업을 진행하는 반면 김병진의 작품은 반대로 비우고 뜯어내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갈필의 먹으로 색을 검게 칠한 후 형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종이를 뜯어내는 이 기묘한 방식은 김병진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독특한 작업 기법 중 하나이다.







▲ 김병진, Flowers-1, 100x70cm, 캔버스에 종이수묵, 2014








▲ 김병진, Flowers-3, 72.7x50cm, 캔버스에 그을음, 2015








▲ 김병진, Flowers-4, 100x70cm, 캔버스에 종이수묵, 2015




김병진은 그간의 전시를 통해 수묵의 현대적 변용(變容)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수행해 왔다. 동양화를 전공하며 먹의 깊은 매력에 심취하여 먹을 활용한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한 실험들은 그가 얼마나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는지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통적인 조형 어법을 파괴하는 파격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김병진의 정물은 먹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지만 구도나 여백의 운용(運用)에 있어서는 흑백의 반전이라는 파격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절지화를 지양(止揚)하면서 서양의 정물 구도를 과감하게 응용하거나, 흰 여백을 검은 먹으로 대체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김병진 고유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바로 김병진 작업의 요체(要諦)다.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엄격한 문법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이유를 찾아내어 독자 자신의 머릿속에 배열하게 함으로써 말해진 것의 의미를 독자 스스로 결정하게 하려는 장치”라고 말했는데, 이는 김병진이 시도하는 전통적인 조형 어법의 파괴에 대한 효과를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김병진이 파격과 반전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 중심에는 항상 먹이라는 재료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주거문화가 한옥에서 아파트로 바뀌고 애호가들의 작품소장 성향도 동양화에서 서양화 위주의 밝고 예쁜그림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경향 때문인지 요사이 미술시장은 장르를 불문하고 소위 ‘예쁜그림’ 그리기 열풍에 빠져 있다. 국내 유수의 아트페어 전시장에 나가봐도 ‘누가누가 예쁜그림 잘 그리나’ 같은 미술 경연장을 방불케 하고 있으며 예쁜그림들은 그곳에서 선택이라도 받으려는 듯 온갖 자태를 뽐내고 있다. 상업화랑 또한 예쁜그림 작가들을 편애하고 선호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예쁜그림 그리기를 강요하는 참담한 실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김병진은 이런 시장의 변화와 유혹에 마치 초월이라도 한 듯 초지일관(初志一貫) 먹을 활용한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병진은 어떤 연유로 이다지도 결벽스러울 정도로 먹 작업에 몰두하는 있는 것일까? 그 이유로는 먼저, 먹의 재료적 특성을 들 수 있다. 먹의 번짐에 의한 농담이 만들어 내는 먹의 향기는 깊고 그윽할 뿐만 아니라 은은한 정취(情趣)를 발산하는 고상한 매력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먹의 정신성이다. 동아시아에서만 사용되는 먹은 동양의 고고한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시류(時流)에 영합(迎合)하지 않고 인간의 도리와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며, 욕망을 억제하고 인간다운 고고(孤高)한 삶을 추구하는 선비의 높은 정신세계를 김병진은 먹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3년 김병진의 모리스갤러리 초대전 서문에서 미술평론가인 황효순박사는 김병진의 먹 작업 정물에 대해 “꽃과 화병, 도자기를 주제로 하는 정물화는 자연스럽게 화병 속에 꽂힌 백합과 해바라기를 중심으로 난, 매화 등을 다루고 있다. 완전히 농묵을 배경으로 정면에 꽃이 꽂혀진 화병이 나타난다. 이렇게 화면의 정면에 물체를 배치하는 구도는 단조롭거나 위험성이 따를 수 있는 구도이다. 작가가 이런 구도를 선택한 것은 중심주제에 전체를 맡긴, 의도된 과감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병진의 작업은 서양의 정물화를 떠올리게 한다. 동양에서의 정물은 대부분 절지화를 화면에 끌어들여도 자연의 일부를 보고자 한 정신 때문에 세우기보다는 뉘어서 그리는 예가 많았다. 김병진의 작업이 서양과 동양이 혼합된 독특한 시선을 유발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정확하고 명쾌한 분석을 내놓은바 있는데, 일견 공감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런 김병진의 독특한 정물은 그간의 전시를 통해 몇 가지 변화를 거쳐왔다. 큰 특징으로 구분되는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면 ① 먹으로 여백을 검게 채우고 중앙에 테이블을 배치한 후, 그 위에 화병과 꽃을 묘사하는 ‘수묵 정물’(이때부터 여백을 먹으로 칠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② 김병진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알루미늄 호일로 작품에 묘사할 화병, 꽃, 풀과 같은 형상들을 템플릿(판형, Template)으로 만들어 붙이고, 판화처럼 찍거나 뿌리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템플릿 정물’ ③ 한 호흡의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완성되는 ‘드로잉 정물’ ④ 먹으로 검게 칠한 종이에서 배경과 형상들을 뜯어내 완성하는 ‘뜯어내기 정물’ ⑤ 촛불의 그을음을 이용하여 종이나 캔버스에 그려내는 ‘그을음 정물’과 같은 방식들을 들 수 있다. 정물을 구현함에 있어 이런 다양한 기법들은 김병진의 투철한 실험정신과 한곳에 안주(安住)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정물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군으로는 ‘부활’ 연작을 들 수 있다. 부활 연작 역시 먹과 여백의 반전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부활 시리즈는 정신적ㆍ육체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작가 개인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의 퇴적(堆積)으로 테두리가 떨어져 나간 성경의 형상과 같은 모양으로 먹을 검게 칠한 후, 그 위에 금분으로 숫자를 반복적으로 써 내려가는 부활 연작은 반복적인 신체행위를 통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정화함은 물론 치유와 회복을 통해 부활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 작업으로 이는 김병진의 종교적 신념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 김병진, 군상, 45x38cm, 캔버스에 그을음, 2015








▲ 김병진, 선물, 100x70cm, 캔버스에 종이수묵, 2015








▲ 김병진, 세가지 약속, 100x70cm, 캔버스에 종이수묵, 2014




이번 모리스갤러리 초대전의 작품은 새롭고 신선한 기법으로 시도한 흥미로운 결과물들이다. ‘뜯어내기 기법’을 통해서는 대작의 정물과 풍경 작품을, ‘그을음 기법’을 통해서는 소품의 정물 작품을, ‘촛농 기법’을 통해서는 추상 작품을 선보인다. 앞에서 김병진 정물의 유형을 설명하며 ‘뜯어내기’와 ‘그을음’ 기법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였지만, 이러한 기법들은 전통적 회화 방식에서 탈피한 신선한 시도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김병진이 그저 새로운 시도라는 관점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도 못지않게 작품의 완성도 또한 예술적 성취(成就)가 동반되어야 함을 담보(擔保)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다양한 기법들은 새로움에 대한 고민 없이 자기 복제만을 반복하는 ‘자기복제 작가’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얼마 전 김병진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수북하게 쌓여있는 40호 크기의 수묵 드로잉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일기처럼 작업한다는 작품들을 살펴보니 존경하는 선배 작가에 대한 오마주(Hommage)부터 민감한 사회적 이슈 같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까지 구상과 반구상, 추상으로 아우르고 있었다. 대충 보아도 몇 백장은 될 듯 보였는데 작가는 평생 만 여장의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매일 한 장씩 그리더라도 족히 30여 년은 걸릴 세월이다. 부디 그 소망 성취는 물론이고 자자손손(子子孫孫) 기억될 명작이 대량으로 양산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