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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싶은 땅 - 정철展
 전시기간 : 2015-04-02 ▶ 2015-04-15
 참여작가 : 정철(Jong Chul 鄭澈)
 오 프 닝   : 2015-04-02 AM 10:30
 



『 믿고 싶은 땅 - 정철展 』

Jong Chul Solo Exhibition :: Painting











▲ 정철, 믿고 싶은 땅-8, 91x117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전시작가 정철(Jong Chul 鄭澈)
전시일정 2015. 04. 02 ~ 2015. 04. 15
초대일시 2015. 04. 02 AM 10:30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8:00(월요일 휴관)
∽ ∥ ∽

모리스갤러리(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T. 0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믿고 싶은 땅’을 위한 고난과 역경의 길
- 정철 작업에 대한 고찰(考察)

황선형(모리스갤러리, 아트허브 대표)


소년 정철은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앞이 훤히 보이는 곳에 앉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어쩌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가고, 풀벌레의 울음 소리와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 그리고 가끔씩 휘몰아 치는 스산한 바람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전방에는 몇 집 되지 않는 조그만 농가와 굽이진 길의 버스정류장,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내(川)와 논밭 그리고 저 멀리 장막과도 같이 마을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높디 높은 산만 보일 따름이었다. 유년시절 정철이 동네 뒷산, 명당으로 불리는 묘지 앞에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눈과 마음에 담은 장면들이다. 1993년 첫 번째 개인전 이후 근 10여 년간 매달렸던 <무덤 앞에서> 연작은 이렇게 잉태되었다. 그리고 이후 전개될 <믿고 싶은 땅> 연작과 <산> 연작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며 정절의 독특한 윤번제(輪番制) 작업방식의 계기가 된다. 한지에 먹과 채색을 곁들여 거칠게 표현한 반구상의 <무덤 앞에서> 연작은 그로테스크(Grotesque)하면서도 아련한 그리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먹의 두꺼운 선으로 사람의 형상을 거칠게 묘사한 후 그 형상의 안쪽에 집과 꽃, 나무와 같은 일상적 소재들을 그려 넣고 약간의 채색을 곁들여 완성되는 <무덤 앞에서> 연작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거칠게 보이지만 부재(不在)하는 존재의 잊혀져 가는 기억을 힘겹게 되감아 논듯한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게 된 작가는 매일 버스정류장이 가장 잘 보이는 동네 뒷산에 올라 언제 올지 모르는 부모를 기다렸다. 이렇게 잉태된 <무덤 앞에서> 연작은 부재와 내적 갈망 사이에서 형성된 작가의 의식체계에서 부모라는 대상에 대한 상(像 Image)을 회고하듯 그려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 정철, 믿고 싶은 땅-1, 35x3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정철, 믿고 싶은 땅-2, 35x3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이후 10여 년간의 <무덤 앞에서> 연작을 마감하고 2003년부터 새롭게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중인 비구상 계열의 <믿고 싶은 땅> 연작과 구상 계열의 <산> 연작은 상호 관계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움을 촉발시킨다. 큰 붓의 터치로 순간의 감성적 에너지를 발산해 표현하는 모노톤의 <믿고 싶은 땅> 연작과 먹과 채색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와 밀도 있게 쌓아 올려 완성되는 컬러풀한 <산> 연작은 조형형식과 작업방식, 재료, 색의 사용에 있어 상반된 대척점(對蹠點)에 있는 연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상반된 연작들을 일정 기간 동안 윤번제로 돌아가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년시절 작가의 의식체계에 깊이 각인된 부모에 대한 상(像 Image)을 공통적으로 연작의 모티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으며, 이 상(像 Image)들은 서로 하이퍼텍스트(Hypertext)적으로 작동하는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작가 조지 P. 랜도(George P. Landow)에 의하면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의 덩어리와 그것을 결합시켜 주는 전자적 링크들로 구성되는 텍스트"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하이퍼텍스트는 “상호 연계된 정보 조각들과 링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믿고 싶은 땅> 연작을 작업 중에 이 연작을 대표하는 ‘대지’라는 키워드(keyword)는 <산> 연작의 나의 어머니로 지칭되는 ‘땅’으로 하이퍼링크 되고, 이는 다시 <믿고 싶은 땅> 연작의 ‘자연의 본질인 어머니’로 또다시 하이퍼링크 되어 상호 밀접한 순환적 고리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두 연작간의 대척점에 있는 작업방식은 이런 하이퍼텍스트적 관계로 인해 윤번제 작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윤번제 작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작업 전반에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작가에 의하면 어떤 한 연작의 연속된 작업 속에서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질 즈음, 다른 연작에 대한 작품 구상이 활발해지고 작품 행위 자체가 그리워지면서 창작의지가 촉발된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연작으로 작품을 전환하게 되면 그 동안 구상했던 작품들이 쏟아지고 새로운 리듬을 타면서 작업 전반에 활기를 띤다고 한다.

정철은 2009년 <산> 연작으로 전시를 열며 기술한 작가노트에서 작위적으로 무작위를 만들어 우연과 허술함을 가장한 철저하게 계산된 짜임새 있는 작품들을 구도자와도 같은 자세로 작품의 화두를 찾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산을 묘사함에 있어 문자 ‘山’을 반복적으로 중첩해 채워나가고 여백이라는 공간의 조형적 실험을 통한 자신만의 조형 형식의 확립에 대해 논하면서, 영혼의 근원이며 어머니인 땅의 위대함을 작품으로 담아내고 싶다며 <산> 연작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하였다. 사실 <산> 연작의 핵심을 작가노트에 기술된 내용에 기대어 더 근본적으로 분석해보면 유년시절 마을 뒷산에 올라 바라보았던 높디 높은 산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향’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높은 산은 소년 정철에게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었으며, 또 그 산 너머는 부모가 계시는 고향이기도 하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이상향 그 자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높은 산의 장막은 모든 것을 갈라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움만 더욱 증폭 시키는 불통(不通)의 벽이기도 했다. <산> 연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내용들을 바로 직감할 수 있다. 산은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면을 꽉 채워가며 높게 그려져 있으며, 평면적으로 묘사된 산은 마치 차단막을 쳐 놓은듯해 일반 산수화의 산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하게 채색으로 처리해도 될 산은 작가의 의도대로 ‘허술한 밀도를 가장한 짜임새’를 위해 문자 ‘山’을 수 없이 써 넣었다. 그러나 수 없이 써 넣었던 문자 ‘山’의 본질은 하염없이 기다리며 마음속 깊이 응축되어 버린 그리움이라는 한을 분출하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결국 <산> 연작은 연속적 반복을 통해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현실 저 너머 세계인 이상향을 향한 외침인 것이다.







▲ 정철, 믿고 싶은 땅-3, 82x90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정철, 믿고 싶은 땅-4, 117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정철, 믿고 싶은 땅-5, 117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산> 연작과 윤번제로 작업중인 <믿고 싶은 땅> 연작은 그간의 전시에서 조형방식과 재료적인 측면에서 거듭된 변화를 모색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구상계열의 작품과 전통적 재료를 조합한 방식으로 시작된 <믿고 싶은 땅> 연작은 반구상 형태와 혼합재료를 조합한 방식을 거쳐 서화일체(書畵一體)라는 동양화 특유의 전통적 방식이 가미된 추상 계열의 작품과 혼합재료(작품의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재료를 섞어 작가가 직접 제작한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철은 2005년 <믿고 싶은 땅> 전시의 작가노트에서 “작가 본인에게 땅은 자연의 본질이며 어머니이다. 그것은 너무도 크고 깊어서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으며 문자나 언어적으로도 감히 표현치 못할 고독한 상처이다.”라고 대지의 의미를 규정하고 경외감을 나타냈다. 또한 “나는 이번 전시회에서 단 한 점의 그림이라도 순수와 땅에 대한 믿음, 믿음에 대한 절규와 외침이 배어 있으면 한다.”라고 작가가 이루고자 하는 소망에 대해 언급하였다. 즉 <믿고 싶은 땅> 연작은 부모라는 상징에 대한 기억의 파편(破片)들을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땅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객관적 보편성을 획득함으로써 정철 고유의 화법을 완성해 가는 단계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정철은 기본적으로 기운생동(氣韻生動)에 입각(立脚)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기운과 기품(氣品)이 넘친다는 의미로 쓰이는 기운생동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동양 예술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여겨져 왔다. 그 동안 시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의미와 해석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예술가들은 “밖으로 드러난 형체와 색을 적절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내재적인 정신적 기질과 성격적 특징을 조화롭게 표현함으로써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 속에서 진실을 찾아냄은 물론 현실을 읽을 수 있는 상태”를 기운생동의 가장 이상적인 작품으로 여겨왔다. 정철의 작품을 살펴보면 가급적 기교(技巧)를 배제한 상태에서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채나 현란한 수사(修辭) 없이도 정철 특유의 리듬과 생동감으로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대상의 개성적 특징들을 잘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정철의 작품이 이상적인 기운생동의 작품들과 같은 맥락(脈絡)에 놓여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모리스갤러리 초대전에 출품되는 <믿고 싶은 땅> 연작은 그 동안 진행해온 연작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면서도 한층 심화된 은유적 추상작품들을 보여준다. 일례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소재들에 대한 묘사는 다중적 겹(Layer)의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 먼저 기억에서 끌어 올린 상징적 소재를 심도(深度) 있게 묘사한 후, 그 상징들을 오래 전 흐릿한 기억에 비추어 그림을 뭉개 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그 위에 조각난 기억의 흔적들을 표식(表式)해 나간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요동치는 작가의 심리적 상태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오래 전 기억과 그 기억을 다시 회상하여 조형적 언어로 번안(飜案)하는 이 과정은 정철 작업의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억의 트리거(방아쇠 Trigger)가 연속적으로 작동하면서 작품에 피드백(Feedback)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철이 트리거에 의한 과거의 사고체계에 의존한 작업만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분야의 예술가를 막론하고 작품이라는 결과물은 경험의 소산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 의식체계의 구조적 한계인데 중요한 것은 객관적 보편성의 획득과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산다. 그 기억은 우리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어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결국 좋은 예술가란 경험의 소산을 긍정적 사고로 전환시켜 창작에너지를 생성하고, 이를 동력으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개관적 보편성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는가의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요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는 정철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정철, 믿고 싶은 땅-6, 91x117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정철, 믿고 싶은 땅-8, 91x117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 정철, 믿고 싶은 땅-9, 81x2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정철은 대학 졸업 후 가진 첫 번째 전시를 시작으로 <묘지 앞에서> 연작을 거쳐 <믿고 싶은 땅>, <산> 연작을 병행해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술인으로 살아남기 척박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에서 전업작가로 작업에만 매달린다는 것은 인내와 고통을 담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철은 추호의 흔들림 없이 근 20여 년 이상의 긴 시간을 작품의 본질과 정체성, 조형어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런 치열한 고민에 대한 결실일 뿐만 아니라 향후 전개될 정철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정철은 이제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혼신의 힘으로 잘 헤쳐왔다. 그러나 정철 작업의 궁극의 지향점인 ‘믿고 싶은 땅’에 이르기 위해서는 겹겹의 험난한 ‘산’을 극복할 수 있는 내공(內功)을 더욱더 함양(涵養) 시켜야 함은 물론이고, 작가는 그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작가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작업실을 방문했다가 작품 속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났다. 道不遠人(도부원인) - 도는 사람의 본성에 있는 것이지 멀리 있지 않다. 혹시 이 글이 답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곱씹어볼 말이다.